명리학에 대해서 알아보겠습니다. 명리학을 어렴풋이 들어보신 분도 있을 텐데, 사실 명리학이 무얼 말하지는 를 알고 있는 분은 많지 않을 듯합니다. 오늘은 명리학이 어떻게 생성이 되었고, 어떤 과정으로 발전이 되었는지 알아보고, 우리나라에서 명리학이 언제 시작되었는지도 알아보겠습니다.
사주명리학 기원과 발전
명리학은 음양오행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는데, 이는 당나라의 이허중과 송나라 서자평에 의해서 만들어진 것이다.
이허중은 "이 허 중명서"에서 인간은 태어난 년, 월, 일에 의해서 운명이 결정된다고 하여 태어난 년을 기준으로 사주팔자를 분석했다. 오늘날 당사주라는 알려져 있는 것이 이허중 명서가 기준이 되는 것이다.
송나라 때 서자평이 쓴 연해자평이란 책에서 유래해서 자평 명리학이라 불리는 것이 바로 명리학의 근간이다. 이후 명나라 태조 주원장의 책사 유백온이 사주명리학의 3대 고전 중 하나인 "적천수"로 이론적인 체계를 발전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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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나라 때 여춘태가 궁통 보감을 출간하고, 심효첨이 자평진전이라는 책을 출간하여 송나라 때의 적천수와 더불어 사주명리학의 3대 고전으로 불린다.
하지만 중국 공산당 정권은 문화혁명을 계기로 명리, 점술 등을 박해하여 몰아내버렸고, 이들은 대만으로 피신하여 명리학의 명맥을 이어가게 되었다.
일본은 중일전쟁 때 "아베 다이장"이 종군기자로 활동하면서 사주팔자에 대한 중 국고서를 수집하여 일본으로 가져가 일본 사주명리학의 기초를 만들었다. 일본에서는 운명을 추리한다 하여 "추명학"이라 불린다.
우리나라는 고려시대에 유래된 것으로 추정되고 있지만, 문헌으로 확인되는 것은 조선 태종 원년인 1401년 조선왕조실록에서 유래를 찾을 수 있다. 명리학은 조선 초기부터 과거시험에 명과학이라는 과학, 잡과, 취재 과목으로 편입되어 왕실과 조선의 대소사에 깊이 관여되어 있었다.
조선의 명리학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한민족 정체성 말살을 위해서 명맥이 단절되어버렸는데, 명리학을 점술 행위로 미신 취급을 받게 하면서 제도권 밖으로 밀려나게 한 것이다.
태초부터 인간은 미래에 대한 궁금증을 가졌고, 과거로부터 미래를 알기 위해서 학문적인 노력을 해왔던 것이다. 하지만 미래는 결정되거나,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고 매일매일의 우리의 행동에 의해서 미래는 달라질 수 있음을 알아야 한다.
사주팔자는 정해져 있는 것이라 믿고, 사주만으로 좋고 나쁨을 결정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이고, 인간에게 길과 흉은 항상 같이 있는 것이기 때문에 명리학의 음양오행의 수시 변화를 파악하여 운명의 길흉을 파악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또한 사주풀이와 우리의 삶과의 연관성을 증명할 수 없어서 사주명리학의 모든 논리는 공중누각일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 있는 것은 많은 이들이 사주풀이가 많다고 증명하더라도 맞지 않다고 주장하는 사람들도 있어서, 사주풀이의 논리적인 정합성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사주명리학의 생명력은 사주풀이가 맞다는 것을 증명하는 데 있는 것이 아니고, 고단한 삶에서 위로와 희망이 되어주고 있다는 것이 더 중요하고, 이를 더욱 문화자산으로 전승되도록 하는 것이 더 좋을듯하다.